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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

옥시의 줄기 자르기

(옮겨 심는 중: 2019. 7. 20. 저녁 8시 반쯤에 쓴 글)

 

지난주 토요일 이용진의 생일을 맞아 꽃을 사러 갔는데... 당사자와 함께 가서 약간 로맨틱하지는 못했지만 ㅋㅋ 우린 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 꽃다발을 촤악 줄 것도 아니고 이용진이 꽃다발을 받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왜냐면 나는 받는 걸 좋아하니까 ㅋㅋ) 해서 식탁에 꽂아놓으려고 서울대입구역의 작은 꽃집에 갔는데 장미니 작약이니 하는 원래 예쁜 꽃들이 있었지만 그날따라 별로 눈에 안 차서 가게 바깥을 보았는데 푸르고 작고 줄기는 길고 예쁜 꽃이 꽃시장에서 갓 떼 온 듯한 비주얼로 다라이ㅎㅎ에 여러 다발 꽂혀 있었다. 내가 또 얼마 전에 탄생화라는 것에 아주 꽂혀서 탐독했는데 우리 이용진의 탄생화는 어쩜 본인한테 너무 어울리게도 잡초꽃(flower of grass).ㅋㅋㅋㅋㅋ 잡초꽃이라는 말이랑 조금 어울리게 소박하면서도 푸르고 귀엽고 꽃이 작고 너무나 예쁜 꽃이었다... 그래서 그 옥시라는 꽃을 딱 만 뭔어치 사서 신문지에 둘둘 싸서 집에 가져와서 다 먹은 "외제" 할라피뇨(*오 노... 또 병이 도져서 할라피뇨인지 할라페뇨인지 정확히 쓰고 싶어서.ㅋㅋㅋㅋㅋㅋ 국어원 사이트 들어가서 용례 찾아보니 없고 사전에도 등재 안 되어 있고 우리말샘에는 '할라피뇨'라고 되어 있었지만 맞는 표기인지 확신이 없어서 온라인가나다 뒤져보니 18년 1월 기준으로 심의는 안 되었지만 에스파냐어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할라페뇨'로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네... 정말 고통이다.ㅋㅋㅋ 할라피뇨라고 쓸까 할라페뇨라고 쓸까ㅠㅠ 일단 그냥 많이 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할라피뇨...) 유리병에다가 물을 채우고 옥시를 꽂아 놓으니 너무 예쁘고 맘에 들었다. 사위 생일에 꽃이랑 케이크 사라고 돈 준 엄마(ㅋㅋ엄마도 참)도 옥시 좋아한다고 예전에 보고 예뻐서 샀었다고 그래서 뭔가 더 운명적인 느낌??! 이었고 그렇게 이용진 생일은 행복하게 쿵짝쿵짝 지나갔고...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갔다. 오래 못 간다던 엄마 말대로 옥시는 시들시들해졌고 시들어서 갈색으로 마른 꽃들이 하얀 식탁 위로 툭툭 떨어지는 것도 보기가 참 그래서 어서 쟤를 치워야 하는데... 하면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못 치우고 있다가 이용진이 집을 비우고 하루종일 나 혼자 집에 있었던 오늘 방금 불현듯 아 저 옥시를 이젠 버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줄기가 기다라니까 잘라서 버리려고 미안하지만.. 이라는 느낌으로 옥시의 한 가슴께 정도를 가위로 툭 잘랐는데 예상치 못했었게도(이게 무슨 말이야) 마치 화이트 같기도 하고 진득한 우유 같기도 한 진액이.. 화이트(수정액)에 더 가까운.. 아주 하얀 진액이 줄기를 잘라낸 단면에 차올라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방울로 맺혀서 깜짝 놀랐다. 아니 더 미안하게 왜 이런 게 나오지? 이차돈이야 뭐야 ㅠㅠ 정말 이차돈처럼 거의 하얀 피처럼 하얀 진액은 줄기를 잘라낸 자리마다 맺혔고 내 가위에도 하얀 물이 묻었다... 이건 자연의 순리이고 플로리스트?같은 전문가인 분들은 이미 다 아는 현상이었을 것이고 내가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겠지만 여튼 줄기를 자르니 하얀 진액이 나오니 물에 줄기를 꽂고 여하튼 살아있었던 애를 내가 가차없이 가위로 잘라버렸다는 느낌에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뭔가 약간 여튼... 마음이 그래서 하지만 그래도 이미 잘라버린 옥시를 살릴 수도 없고 이제 진짜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정말 미안하지만 허벅지께를 다시 한 번 잘라 하얀 진액을 흘리는 옥시를 비닐에 모아서 버렸네.. 이 와중에 그 미지의 하얀 액체가 뭔지 약간 무서워서(??) 만지지는 못했고 ㅋㅋ 가위와 식탁도 물티슈로 닦아냈다. 역시 나야.ㅋㅋㅋ ㅠㅠ 옥시.. 어쨌든 살아있었던 무언가를 싹둑 잘랐고 나의 행동에 뭔가 적극적인(?) 반응이 나타나니 미안하고 여튼 맘이 좀 싱숭생숭했다...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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