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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미치게 하는 층간음악

*독일 시각 새벽 1시 35분*

예전에도 여기에 쓴 적 있는데 윗집(인지 어디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음)에서부터 자주, 내가 이사 온 작년 9월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주로 밤에, 또는 저녁부터 아침까지도 음악 소리가 타고 내려오는데 이게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거야. 때로 보컬도 있는, 때로 무척 그루비하기도 한, 종종 내 귀에도 익숙한, - 흘러간 노래를 다시 부르는 곡도 많고.. 지금은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무척 세련된 베이스 솔로곡이 나오네.- 내가 좋아하기도 하는, 아주 센티멘탈한 재즈를 트는데 - 난 사실 완전히 문외한이라 이건 재즈다.. 이렇게 아주 광범위하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내 집에서는 무슨 악기를 썼는지, 때로는 가사도 뚜렷하게 들릴 정도로, 사실 내 집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라디오를 담가 놓으면 내 방에서 이렇게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음악이 들려온다는 거야. 아마도 24시간 재즈 라디오 같은 걸 틀어 두는지 이따금 나지막한 안내 멘트도 나와. 근데 핸드폰으로 녹음하면 정말 놀랍게도 우리집의 적막한 소음만이 녹음된다는 거지. 녹음된다 해도 아주아주아주아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전혀 안 들릴 정도로만 녹음되지. 그래서 난 내가 헛것을 듣고 있나? 라는 고민까지 했다니까. 집에 놀러 온 많은 친구들이 아, 정말 음악 들리네.. 아주 잘... 이라고 해 줘서 그제야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요는 이 소리를 고스란히, 깊은 밤에, 쓸쓸한 내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감정의 울렁임을 잘 못 견디는 편이라 조금이라도 마음이 그럴 땐 부러 시시껄렁한 영상이나 장난스러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정말 바보같고 웃긴 얘기지만 어제까지 내가 실컷 들었던 아름다운 노래인데 오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자마자 무슨, 불에 덴 것처럼 소스라치며 꺼버렸던 적도 왕왕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섬세한 음악을 들을 때는 주로 내 기분이 안정되어 있거나, 내가 어떤 연약한/미세한 감정에 푹 젖어들어도 그것이 힘든 느낌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다. 이런 나인데 말이지. 이렇게 먼 곳에서, 이렇게 조용한 집에서, 이렇게 밤에.. 거의 언제나 무엇이라도 더 증폭해서, 더 깊이, 더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이런 노래를 밤새 들어야 하는 건 무척 뻐근한 일이란 말이지. 작다기엔 또렷하고, 시끄럽다기엔 너무나 부드러운 노래들을 말이야. 난 황급히 유튜브를 켜고 메인에 있는 아무 영상이나 누르고 볼륨을 키우고 - 들려오는 음악을 충분히 덮을 때까지 - 화면을 끄고 베개 옆에 두고 빨리 잠을 청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의 휴가가 끝나고 열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을 기다리고, 네 시간 심야버스 안에서 흔들리고 선잠이 들고 깨고 시계를 보고 창밖을 보고, 내려서 삼십 분을 기다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 온 시간이 새벽 한 시쯤. 그때 들리던 음악은 예외적으로 참 반가웠다. 익숙하고 또 지금 이곳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더라구? 하지만 이제 다시 그리고 보통 이 “층간음악”은 잠들려는 내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아주 이게 사람 미치는 거야.